찰캉찰캉 엿장수 가위 소리 :그땐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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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캉찰캉 엿장수 가위 소리
80년대와 90년대, 특히 골목이 많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동네를 정겹게 누비던 엿장수 아저씨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힘들지만, 당시 엿장수 아저씨는 아이들에게는 설렘을,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죠.
엿장수 아저씨의 풍경
엿장수 아저씨는 주로 나무 수레나 자전거에 엿판을 싣고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엿판 위에는 길고 투명하게 늘려진 가래엿부터, 설탕을 입힌 깨엿, 검은깨가 박힌 검은깨엿, 그리고 땅콩엿 등 다양한 종류의 엿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죠. 아저씨는 독특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엿 사려~ 엿! 맛있는 엿이오~" 하고 외치며 골목 어귀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가위 소리와 아이들의 발걸음
엿장수 아저씨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찰캉거리는 엿가위 소리였습니다. 엿가위는 크고 뭉툭한 날이 특징으로, 아저씨는 이 엿가위로 딱딱한 엿을 능숙하게 잘라냈습니다.
이 엿가위 소리는 아이들에게는 마치 약속된 신호처럼 들렸고, 소리가 들리면 너도나도 집에서 빈 병이나 고철, 헌 신문지 등을 들고 뛰어나왔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그때는 돈 대신 이런 재활용품을 엿으로 바꿔 먹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빈 콜라병 몇 개에 손바닥만 한 가래엿 한 조각, 폐지 몇 킬로그램에 깨엿 몇 개 하는 식으로 흥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아저씨가 주는 엿 한 조각을 받아들고, 그 끈적하고 달콤한 맛을 음미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엿장수 아저씨는 단순히 엿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달콤함을 안겨주는 존재였고, 어른들에게는 고된 삶 속의 소박한 위안을 주는 이웃 같은 분이었습니다.
엿장수 아저씨와의 교감
엿을 살 때 아이들은 어떤 엿을 고를지 한참을 고민하곤 했습니다. 엿장수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을 인자하게 기다려주셨고, 때로는 덤으로 작은 엿 조각을 더 주시기도 했습니다. 엿을 받아 든 아이들은 저마다 행복한 얼굴로 엿을 질겅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엿은 단순히 간식을 넘어, 어려운 시절의 소중한 단맛이자, 동네 사람들과의 정을 나누는 매개체였습니다.
엿장수 아저씨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엿가위 소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냈던 따뜻한 추억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풍경
이제는 엿장수 아저씨의 모습도, 찰캉거리는 엿가위 소리도 우리의 일상에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편리함과 속도가 중요해지면서 엿장수 아저씨는 시대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밀려났겠지요.
하지만, 가끔씩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그 엿가위 소리는 단순히 엿을 파는 소리가 아니라, 정이 넘치던 골목길 풍경과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그때 그 시절의 향수 그 자체였습니다.

